담배 세갑 태우며 14번 고친 <사나이 눈물>의 두소절 12자
지금가지 않으면 못 갈 것 같아 / 아쉬움만 두고 떠나야겠지/ 여기까지가 우리 전부였다면/ 더 이상은 욕심이겠지/피할 수 없는 운명앞에/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까만 숯덩이 가슴 안고/ 삼켜버린 사나이 눈물/ 이별할 새벽 너무 두려워/ 이대로 떠납니다
돌아서서 흘린 내 눈물속에/ 우리들의 사랑 묻어 버리면/ 못 다 부른 나의 슬픈 노래도/ 바람으로 흩어지겠지/ 피할 수 없는 운명앞에/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까만 숯덩이 가슴 안고/ 삼켜버린 사나이 눈물/ 아침이 오면 너무 초라해/ 이대로 떠납니다
-김병걸작사/이동훈작곡/조항조노래 <사나이 눈물>
지금 들어도 뭉클한 감동이 묻어나오는 내 작품 중 수작이라고 자부한다.
<남자라는 이유로>로 입지를 고른 뒤 조항조는 오랜 무명의 그늘을 벗고 연이어 <사나이 눈물>을 발표하여 방송사가 주는 10대 가수상을 수상 명실공히 최고 가수반열에 올라 선다.
조항조와 나와의 만남은 <사나이 눈물> 훨씬 이전으로 1990년 찬불가에서 시작된다. 당시 조항조는 가창력은 있으되 운이 따라주지 않는 가수로 늘 주위의 안스러움을 사곤 했다. 그가 처음으로 가요계를 출발한 것은 <서기 1999년>이란 보컬이었고 이 보컬팀은 1970년대말 <포구>란 노래로 제법 명함을 내밀긴 하였으나 이후 저조한 활동을 하다 해체되었다. 멤버였던 조항조는 별다른 활동없이 주로 내가 작사하고 당시 한국연에협회 창작분과위원장이던 조영근이 작곡한 찬불가를 부르는 삼류가수였다.
이무렵 한명숙,명국환,남강수,김활선,조항조,머루와다래,하윤주,김흥국 등의 불자 가수들은 너도나도 한두곡씩 찬불가를 취입하고 산사음악회로 공연을 다녔다.
조항조와는 또 다른 인연이 진즉부터 있었는데, 나를 호칭하기를 꼭 김대감이라고 부르던 아세아레코드사의 박성호 전무는 기회 있을 때마다 <김대감, 조항조 알지요? 노래 너무 아깝지 않아요. 아, 어떻게 좀 해봐요.>하면서 조항조를 어필했다.
항조형 한텐 매우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때 나는 박전무에게 <잘 알지요. 그런데 비음이 너무 많아요. 그냥 찬불가나 열심히 부르라고 하세요>라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푸대접 했다.
만날 사람은 기어이 만나는 걸까. 아니면 부처님의 가피가 계셨을까. 조항조는 나의 오판을 복수라도 하듯 박우철이 먹다가 버린 <남자라는 이유로>를 기세좋게 히트시키며 때마침 불어닥친 IMF의 강력한 지원속에 일류가수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도 울었듯이 조항조와 나와의 만남이 무르익고 있었다.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에서 작사한 김순곤이 화자(話者)를 울리지 않았는데 주목하고 <사나이 눈물>에서도 끝까지 화자의 눈물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2절 첫소절에 *돌아서서 흘린 내눈물속에*가 원래는 *돌아서서 감춘 내눈물속에*였다. 취입 과정에서 어감이 <감춘>보다는 <흘린>이 더 낫겠다는 주위의 여론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울리고 말았지만.
가요는 취입과정에서 가사나 멜로디가 일부 수정되기도 하며 그럴 경우 대부분은 가수가 수정동의를 걸어온다. 나는 그래서 취입시는 반드시 현장에 가서 채킹을 한다. 이 미 멜로디와 가사가 완벽한 궁합이라고 작사가와 작곡가가 합의를 봤다 하더라도 노래하는 가수의 발음이나 느낌 같은 데서 더 적합한 말과 코드내에서의 수정멜로디를 작품자가 찾아내기도 하므로 반드시 관여하는 것이 질 높은 안전을 담보한다.
조항조는 느낌이 강한 가수다. 우리는 이런 가수를 끼가 많다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 고집이 많은 가수이기도 하다. 오랜 음악생활을 통하여 체득한 필링이다.
<사나이 눈물>의 <아쉬움만 두고 떠나야겠지>와 <더 이상은 욕심이겠지>는 <아쉬워도 이젠 떠나야겠죠>였고 <더 이상은 욕심이겠죠>였는데 조항조는 <죠> 발음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내 동의를 구한 뒤 수정했다. 즉석 에드립(adlib)이었다. 당초 내가 노렸던 뜻에서 한치는 엇난 것 같아 마뜩치는 않았지만 어차피 부르는 가수의 입맛에 맞아야 하니까 기분좋게 양보했다.
지금와서 곰곰 되돌아보면 고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에서도 동료에게 일부분이나마 참여하는 기회를 주면 더 애착을 갖는 건 인지상정이 아닌가.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겠지만 조항조는 최선을 다해서 이 노래를 취입했고 우리 모두의 소망대로 대박을 냈다.
내가 써주기를 <사나이 눈물>의 원래 제목은 <이대로 타인>이었다. 그런데 우리 바닥의 귀신이라 할 신촌뮤직의 장고웅 사장께서 음반기획자로서의 권리를 내세워 <사나이 눈물>로 결정했다.
나는 이미 이 제목은 나훈아의 노래도 있고 하여 꺼렸는데 장사장의 주장대로 남자 시리즈로 가는 것도 괜찮다 싶어 수락을 했다.
아무튼 서교동 녹음실에서 <지금가지 않으면 못갈 것 같아 >이 첫소절을 빼내는데 나는 담배를 무려 세갑이나 피워야 했다. 고치고 또 고치길 열세번이나 거듭했다.
혓바닥엔 돌기가 돋고 입에선 입김 더운 단내가 났다. 점심나절에 시작한 작업이 어느덧 저녁을 넘기고 있었다.
작곡이 먼저 된 관계로 가사를 깁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만족하며 그제서야 쇼파에 몸을 던졌다. 그날 조항조의 취입을 구경 온 신출내기 여류작사가에게 <바로 이거야! 햐! 고수의 냄새가 물씬 나잖아.> 장고웅 사장의 환희에 찬 칭찬에 안도하며 그제서야 나는 졸리운 눈을 붙였다. <김병걸의 가요천국에서 펌>
사나이 눈물/Clarinet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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