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행기/살아가는 이야기들

제목이 세번 바뀐 이태호의 <사는동안>

가수 신송 2011. 1. 18. 13:24

제목이 세번 바뀐 이태호의 <사는동안>

 

 좋은 노래는 언젠가는 뜬다. 이 말은 가요바닥에 정설로 통한다. 가사와 멜로디와 가수의 노래가 삼위일체로 딱 맞아 떨어지면 누가 뭐래도 히트감이다. 그러나 가요는 홍보 싸움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홍보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알 턱이 없고 설령 홍보를 한다손치더라도 가문날 가랑비 몇방울 떨어지듯 하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하루에도 수백곡씩 쏟아져 나오는 신곡의 홍수는 제한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선별될 수밖에 없고 이 피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집중적이면서 지속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모든 곡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다수의 노래들은  엄청난 PR비가 투자되어 비로소 우리 귀와 눈에 띄는 것이다.

 마치 몇만년전의 별빛을 오늘 보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별빛의 거리만큼 가요 또한 우리앞에 서기까지 여러 제과정의 세월이 투여되며 가수들의 눈물어린 고생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내 몫만큼 살았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은채로/ 이별없고 눈물없는 그런 세상 없겠지만은 /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마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뿌린만큼 살으렵니다/ 가진만큼 아는만큼 배운대로 들은대로/ 가난없고 그늘없는 그런 세상 없겠지만은/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마오. 

                    - 김병걸 작사/김효성 작곡<사는동안>

 

 2009년 5월 현재시점으로 봐서 노래방이나 유흥주점의 인기 순위곡 150위(한국음악저작권협회 각종 자료 집계)안에 드는 <사는동안>은 참으로 사연이 많다. 노래 제목이 <상과벌>에서 <애오라지>로 다시<사는동안>으로 세번씩이나 바뀌는 곡절이 숨어있다.

 이 노래는 1988년에 가사가 먼저 창작되어 작곡이된 작품으로 맨처음 제목이 <상과 벌>이었다.

 작곡을 한 김효성은 그의 나이 마흔도 되기전에 불치의 병으로 1998,3,27에 요절하였다. 나와는 최영주가 불러 홍보한 <당신의 앵무새>를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하였는데 그의 전 작품이 내 작사이다.

 경기도 원당에서 태어나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작품자로 후퇴하여 대리 만족을 하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쓴 황선우 작곡실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보문동에 자그만 사무실을 열어 *주부가요교실*을 운영하던 중 급서(急逝)했다.

 그는 죽기전에 나에게 자신의 주부가요교실을 맡아 줄 것을 소원했고, 나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관리하던 40여명의 주부 회원들을 지금은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지만 당시로선 햇병아리이던 정의송에게 인계하였다.

 정의송은 중간에 몇차레 도망 가려 하였지만 그럴때마다 내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 주저앉았다. 결국 정의송은 거기서 기반을 잡고 입지를 키웠다.

 

 단아한 인품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뛰어났던 김효성은 이 <사는동안>을 신주단지 모시듯 아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대한민국 가요사에 명작으로 우뚝 서게 할테니 두고 보라며 자신했다.

 가수 이태호와는 아주 절친했던 그는 노래를 연습시켰고 1989년 이태호의 매니저인 조동산은 이태호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아세아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기면서 이 노래를 타이틀로 하는 음반을 냈다.

  그러나 운명은 이 노래 대신 함께 취입한<책상위에 뚝뚝뚝>을 홍보곡으로 선정했고  결국 노래 제목이 말해주듯 이태호는 눈물만 흘리다가 <미스고>로 쌓은 명성을 깎아먹고 말았다.

 <상과 벌>. 이때는 김호남 선생이 편곡을 하였는데 정통 트로트 였으며 이태호는 정말이지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몇년 뒤 조동산과 결별을 한 이태호는 현대음반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상과 벌>을 <애오라지>로 제목을 바꿔 타이틀로 새음반을 냈고 열심히 홍보하여 어느 정도는 노래를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던가, 이태호는 성대결절이 와 목을 수술하게 되었으며 자동적으로 이 노래는 또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다 십수년의 세월이 흘러 2005년 이태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한번 만나시죠?> 우리는 창신동에 있는 <숨어우는 바람소리>의 작곡가인 김민우 선생 사무실옆 2층 다방에서 십수년만에 만나 작전을 모의했다.

 <애오라지>를 이대로 썩힐순 없다는데 주목하고 우선 제목부터 바꾸자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이태호는 새제목으로 <사는동안>을 제의했고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그리고 리듬을 느린 트로트에서 템포가 있는 디스코로  편곡하기로 결정했다. 이태호는 재빨랐고 순식간에 새음반이 나왔다.

  2006년말과 2007년초 경인방송의 iTV와 아이넷TV의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사는동안>이 드디어 1위에 등극하고 있었다.

 우리는 증명했다. 홍보만 제대로 하면 *좋은 노래는 언젠가는 반드시 뜬다*는 것을.

<김병걸의 가요천국에서 펌>

사는동안/이태호